김영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20. 4. 27. 19:04문화/책 리뷰

 

김영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인간 각자에게는 주어진 운명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운명의 굴레를 깨트리기 위해 무던히 저항하지만, 신의 뜻을 거역하는 피조물의 결말은 비참할 따름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설 초반부터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덮고 다른 책을 꺼내볼지 고민한다. 소설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고 모든 것을 진실이라 말할 수 없는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소설 속 세상에 공감하며 때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왜 하필 ‘제이’는 고속터미널 화장실에서 세상의 첫 울음을 터트려야 했을까? 소설의 배경이지만 그저 책 속의 한 장면이라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제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모두 현실이 된대요’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상상 이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가득하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넘어 비참함의 결말을 향한다. 이 책을 넘기는 순간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편한 세상의 진실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운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행복과 선으로 가득한 세상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진실의 양면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동전의 뒷면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내려놓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이’의 질주에 동행해보라 말하고 싶다.

 

 정확히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제이’의 친엄마는 고등학생으로 짐작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란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순간이며 행복으로 가득한 시간일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의 손으로 탯줄을 자르고 새로운 세상의 첫울음 터트린 아이의 마지막 순간마저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려했다. 그것이 ‘제이’가 이 세상에 나타난 운명의 시작이고 결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제이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제이’가 경험하고 살아야 했던 삶은 누구의 의지였는가? 화장실에서 태어나 ‘돼지엄마’의 손에 길러졌지만 당연하게 부유하고 안정된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룸살롱을 오가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마주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철거 예정인 마을에 홀로 남겨졌다. 그 후 보육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영혼의 존재에 대해 실감한다. 

 

“영혼이 있는 것을 그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거야.”

 

제이는 개의 영혼들과 교감한다. 살아있는 것을 넘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무의 존재와도 영혼의 교감을 한다. 화재의 한 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개들을 풀어주고 다시 개들을 잡아가려는 사냥꾼의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낸다. 영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제이의 의지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저항이었다. 운명은 곧 영혼이 살아가는 방향이자 의미였다.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운명의 틀 안에 갇힌 자신의 영혼, 어쩌면 제이가 책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아가는 길은 운명의 굴레 갇힌 모든 영혼 자유와 해방을 위한 신에 대한 저항이자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제이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 이면에 남아있는 어두운 단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제이는 스스로 길과 길이 만나는데서 태어나 계속 길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 고백을 한다. 자신의 영혼이 머물 운명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곧 자신과 마찬가지로 길에서 방황하고 고통 받아야만 하는 연약한 영혼들의 운명과 마주한다. 집이 없이 길에서 방황하는 10대들의 모습, 아니 그 모습은 결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0대의 모습이 아니다. 스스로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또래 남녀 아이들이 벌이는 난잡한 성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운명의 모습들, 이는 한낱 육신의 껍데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한 것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가치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후 오토바이 폭주족의 리더가 된 제이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은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영혼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던 제이는 모두의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오토바이의 영혼, 그가 달리는 도로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제이의 질주는 폭주족들 사이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는 점이다. 물론 작가의 창작으로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책 뒷부분에 제이에 관한 인터뷰와 글을 읽으면 이 이야기가 소설인지 현실인지 혼동되는 망각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더불어 영혼의 구제를 위한 ‘제이’의 존재를 바라는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소설이다. 우리는 주어진 운명과 나 자신의 영혼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가끔은 내가 아닌 타인의 영혼에게 진심어린 공감을 원할 때가 있다. 가야할 길의 방향을 잃은 방황하는 영혼들의 구세주이자 길잡이가 바로 ‘제이’의 존재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많은 부분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지금 나는 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지금 내 영혼은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의 영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두의 영혼을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스스로 어떻게 판단하고 타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모두의 영혼은 존귀하다. 이 책을 읽고 나 자신, 그리고 누군가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하 장편소설너의 목소리가 들려